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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2019년에 다시 보는 `카인의 후예` [출처: 매일경제 2019.06.27]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6/27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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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은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의 큰아들이다. 농부인 카인은 신에게 농작물을 제물로 바쳤고, 양치기인 동생 아벨은 고기를 제물로 바친다. 그런데 신이 아벨이 바친 제물만 가져가자, 카인은 질투심이 끓어올라 결국 동생을 잔인하게도 돌로 쳐 죽이고 만다. 소설 '카인의 후예'는 1954년 황순원 선생의 작품인데, 작가는 왜 카인을 소설 제목에 갖다 썼을까? 또 카인의 후예는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이 소설의 배경은 해방 직후의 북한이다. 한반도 북쪽에는 소련군이 들어오는데, 공산당은 인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세운다며 지주, 자본가, 지식인 등 '인민의 적'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과 살육을 시작한다. 또 토지개혁을 빌미로 지주들의 땅을 빼앗고, 인민들을 착취했다는 죄목으로 처벌한다. 그동안 억눌린 감정을 가져왔던 소작인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마음껏 표출한다. 결국 토지개혁은 농촌을 오직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로 나눠 서로를 미워하고 죽이는 아수라장으로 만든다.

주인공 '박훈'은 지주의 아들이다. 그는 평양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부모가 사망하자 고향 '양짓골'로 내려와 가난한 농민 자녀를 위해 야학을 하던 중 해방을 맞는다. 숙청과 토지 개혁 와중에서 그의 집안도 결코 평탄할 수는 없었다. 20년 동안 박훈 집안에서 일했던 '도섭 영감'은 인민위원장이 되어 그에게 적대적 감정을 드러내고, 시대 변화에 편승한 마을 사람들도 그에게 모두 등을 돌린다.

이 소설에서 카인의 후예는 과연 누구일까? 완장을 찬 후 갑자기 달라진 도섭 영감일까? 지주들에게 등을 돌린 마을 사람들일까? 문학평론가 김욱동 교수는 이렇게 해석한다. "작가는 양짓골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인간 모두가 카인의 후예라고 말하는 듯하다. 착한 주인공인 박훈마저도 궁지에 몰리자 도섭 영감을 죽이려 한 것을 보면 그 역시 카인의 후예인 것이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 가슴속에 카인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다. 그래서 카인은 어떤 구체적 인물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본성이다. 카인은 보통 때 마음 한구석에 숨어 있지만 위기나 시련이 닥치면 갑자기 밖으로 튀어나온다.

도섭 영감이 박훈을 죽이려 할 때 도섭 영감의 딸인 오작녀가 나타나 그를 구한다. 그와 박훈은 서로 사랑했으나 신분의 차이로 맺어지지 못한 사이다. 또 카인의 피가 살아난 박훈이 도섭 영감을 죽이려다 오히려 영감이 휘두르는 낫에 베일 위기에 처하자, 영감의 아들이자 오작녀의 동생인 '삼득'이 그를 구하며 누나와 함께 도망치라고 부탁한다. 그의 진정성을 알아차린 박훈은 오작녀에게 달려간다. 소설에서 주인공 박훈이 악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한 여성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작가인 황순원 선생은 우리 마음속의 카인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은 바로 사랑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지금 대한민국은 보수와 진보로 분열돼 있다. 정치인들은 대화를 하지 않고, 강성노조는 공장 멈추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저마다 마음속에 잠자던 카인을 깨워 상대를 적폐로, 좌파로 몰아간다. 이러는 동안 설비투자, 외국기업 직접투자는 감소하고, 기업들은 고전을 면치 못해 무역수지마저 적자로 전환했다. 그 결과 일자리는 점점 줄고, 나라는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정치인의 사명은 국민을 사랑하고 행복하게 하는 일이다. 그러려면 여야가 대화하고 타협해 힘을 모으는 것이 너무나 기본적이고 당연한 일이다. 만약 타협 없이 자기주장만 한다면, 국민을 앞세우지만 사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것임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지도자들이여! 지금 당신의 마음속에는 카인을 품고 있는가, 아니면 카인을 물리칠 사랑을 품고 있는가? 1954년 황순원 선생이 던진 질문에 답해야 할 때다.

[강신장 모네상스 대표·한양대 특임교수]

출처URL: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09&aid=000438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