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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2019 사반의 십자가 [출처: 매일경제 2019.02.21]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2/2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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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소설가 김동리는 문제작 한 편을 세상에 내놓았다. 제목은 '사반의 십자가'. 주인공 사반은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가상의 인물이다. 사반은 유대를 점령한 로마군을 물리치고 조국의 독립을 찾기 위해 싸운다. 열여덟에 혈맹단(血盟團)이라는 비밀 결사를 조직하고 이끌지만, 구원자가 나타나 민중을 단합하지 않으면 세계 최강 로마군대에 승산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때 점성술사 하닷에게 곧 메시아가 나타날 것이라는 계시를 듣고 사반은 기뻐한다. 메시아와 협력하면 조국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한걸음에 예수를 찾아가지만, 크게 실망한다. 예수는 핍박받는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구원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고, 하늘나라 천국에만 몰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사반은 흉계에 빠져 로마군에게 잡히고, 사형을 선고받는다. 십자가에 매달린 그는 다시 한번 예수를 만나지만 끝내 타협은 없었다. 사반은 예수가 말하는 내세의 낙원을 거부하며 최후의 순간을 맞는다.

김동리 선생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1958년은 우리 민족이 일제 식민지라는 시련과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큰 상처를 입고 난 직후다. 그런 시절 '사반의 십자가'는 우리나라가 어떻게 해야 우리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소설에는 좀처럼 화해할 수 없는 두 세계관이 등장한다. 사반은 유대의 독립이라는 현세의 가치를 추구하고, 예수는 미래에 다가올 천상의 왕국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 두 세계관은 마치 기름과 물처럼 서로 화해하지 못하고 극단을 향해 달려간다. 작가는 폐허가 된 조국을 구할 방법을 예수의 이상주의에서도, 사반의 현실주의에서도 찾지 않는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은 공허하기 쉽고, 이상을 저버린 현실은 추악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과 현실은 마치 자전거의 두 바퀴처럼 함께 움직이며 상대를 인정하고 힘을 모을 때만 비로소 의미를 지닌다고 본 것이다.

2019년 오늘 대한민국은 타협할 수 없는 두 세계관으로 나뉜 듯하다. 보수 정권의 핵심 가치는 '자유'였다. 정부와 국민은 시장의 힘을 믿고 기업가들에게 자유를 부여했다. 기업이 잘되면 일자리도 늘고 근로자들도 함께 잘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환위기 후 일자리는 늘지 않았고 고용의 질도 나빠졌다. 그런 상황에서 진보 성향의 문재인정부가 출범했고 '평등'에 관심이 컸다. 시장의 힘만으로는 심화된 양극화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보고 소득주도성장론을 바탕으로 노동 친화적 정책을 폈다. 하지만 이번에도 일자리는 쉽게 늘지 않고 있고, 경제는 활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참 안타까운 상황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가야 하는 것일까. 기업가가 없으면 일자리는 만들어지지 않고, 인재가 없으면 기업도 설 자리가 없다. 또 진보가 평등의 재원을 계속 만들어 가려면 자유라는 가치가 필요하고, 보수도 자유를 지속 가능하게 하려면 진보의 힘이 필요하다. 미국의 빌 클린턴 정부,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정부,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정부의 공통점은 경제 성장을 이룩한 진보 정부라는 점이다. 이들의 성공은 평등뿐 아니라 자유라는 가치와 시장의 중요성을 알고 이상과 현실의 두 바퀴를 함께 움직였기에 가능했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근로자를 보호하고 불평등을 보완하는 정책은 필요하다. 이제 남은 과제는 기업가정신을 살리는 것이다. 기업가들은 치열한 글로벌 전선에 나가 싸우는 국가대표 선수들이기에, 2019년의 사반은 기업가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이 창조적 플레이를 마음껏 할 수 있도록 하려면 규제를 활짝 풀어줘야 한다. 만약 기업가들을 살피지 않는다면 고용은 악화되고 미래는 더욱 불투명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2019년의 사반들이 전선에서 승전보를 전해 올 수 있도록 정부와 국민이 모두 힘을 합쳐야 할 때다.

[강신장 모네상스 대표·한양대 특임교수]

 

원문URL: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09&aid=0004307941